그는 여행중독자였다.
늘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그에게 길 밖에 있는 시간은
미루나무처럼 불안하고, 먼지처럼 황량하고,
날선 연필칼처럼 위협적이다.
여행은 아스피린처럼, 파스처럼,
잘 만든 문장처럼, 불후의 재즈처럼,
연애의 입술처럼,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
덜컹거리는 열차에 앉아 잡지를 뒤적이든,
버스안에서 졸든, 비행기 창문으로 뭉게구름을 바라보든,
낯선 도시의 여관에 홀로 남겨져 빗소리를 듣든,
바닷가를 헤매든, 깊은 산속에 버려졌든,
다만 이곳에 있지 않음이 그에게는
곧 여행이었고 행복이었다.
여행은 삶의 진짜 속살을 보여주었다.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TV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는 시간 보다는
마지막 기차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배낭을 꾸리는 시간이 더 행복했다.
여행 도중 만나는 사람과 기차와
곷과 들판과 노을이 좋았을 뿐이다.
생은 그곳에서 충분히 아름다웠으므로 ...